중국에 간 영화 바비, ‘페미니즘·젠더’ 문제 불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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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할리우드 영화 바비가 중국에서 드물게 젠더 문제가 논의되는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21일 중국에서 개봉한 바비의 상영 횟수는 개봉 당일 9673회에서 27일 3만6000회로 크게 늘었다. 28일까지 벌어들인 수입은 1억3500만위안(약 240억6500만원) 가량으로 한 주 일찍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 수입(3억1200만위안)에 한참 못 미치지만 통상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 및 남성 주도적 액션 영화 위주인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더해 바비를 통해 중국에서 드물게 젠더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는 공론장이 형성돼 흥행 성적 이상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관영 CCTV의 유명 진행자이자 방송계 실세인 주쥔의 성폭력을 폭로해 중국 미투(Me too)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시나리오 작가 저우샤오쉬안은 “모든 소녀들이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 이 영화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며 바비가 중국 여성들에게 젠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비가 “전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영화는 아니지만 중국에 주는 의미는 크다”며 “이제 모든 영화관이 페미니즘을 담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비 덕에 많은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재회했다. 영화관에 가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합법적 활동”이라고 덧붙였다. 2021년 중국 베이징 법원은 저우가 주쥔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저우가 성폭력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증거 불충분으로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중국 젠더 문제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레타 홍 핀처 미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에서 이렇게 명시적으로 페미니즘을 표방하면서 막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는 없었다”며 중국에서 바비의 인기는 중국 젊은 세대가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지 이제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바비의 페미니즘은 전복적이지 않고 매우 받아들이기 쉽다. 중국을 포함해 성평등 운동에 대한 탄압을 일삼는 어떤 정부도 화나게 할 요소가 없다”며 “이 영화는 (중국) 검열관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났다”고 덧붙였다.

미국 CNN 방송은 바비가 중국에서 성평등과 여성 대표성 증진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가상 세계를 묘사한 바비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인 중앙정치국원 24명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전원 남성으로 꾸려진 뒤 개봉했다.

▲영화 ‘바비’의 한 장면. ⓒAP=연합뉴스

중국 여성들 사이에선 바비가 주변 남성이 성차별적이거나 여성혐오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에서 바비를 관람하던 일부 남성 관객들이 유독한 남성성을 비판하는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상영 도중에 자리를 떴다는 목격담이 소셜미디어(SNS)에 다수 공유됐다. 중국의 대중적인 영화 평가 사이트 더우반에선 바비가 10점 만점에 8.4점을 받아 함께 상영 중인 영화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평점을 획득한 반면 남성 위주 커뮤니티에선 5점대 평점이 기록되기도 했다.

미 매체 <인사이더>는 중국 젊은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한 SNS 플랫폼에 바비에 대한 반응으로 남자친구의 가치관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는 만일 남자친구가 바비와 여성 영화감독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한다면 그는 “유독한 남성우월주의자”일 가능성이 높고 반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절반이라도 이해하는 남성은 “건전한 가치관과 안정적 감정을 가진 정상적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개봉 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 흥행을 누리고 있는 바비는 아시아에선 우여곡절을 겪었다. 베트남에선 영화 내 남중국해 지도에 구단선이 표시돼 있다는 이유로 상영을 금지 당했다. 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임의로 그은 9개의 선으로 중국은 이 선 내 대부분 지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해 베트남과 필리핀 등 인근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구단선이 등장하는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선에서 상영이 허가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바비가 중국 상영을 위해 영화에 구단선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비는 한국에서도 지난 19일 개봉 뒤 30일까지 관객 43만2000명 가량을 동원해 흥행 실적이 높지 않다. 31일 오후 바비에 대한 네이버 영화 평점이 8.54점을 기록한 가운데 남성 관객 평점은 6.04로 낮은 편이다.

미국의 사람형 인형인 바비를 모델로 해 만들어진 영화 바비는 여성이 사회의 전 영역에서 권력을 가진 가상 세계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던 바비가 이와는 거의 반대 양상으로 돌아가는 현실 세계로 들어온 뒤 벌이는 모험을 다뤘다. 영화는 어린 시절 대중적으로 갖고 놀던 바비 인형에 대한 추억, 여성들이 권력을 가진 세계에 대한 묘사, 남성성에 대한 풍자 등 여러 요인이 결합돼 인기를 끌고 있다.

1959년 첫 출시된 바비 인형은 여성 신체를 너무 마르게 묘사해 여성에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강요하고 거식증을 유발하며 금발 백인 위주 인형 출시로 백인 중심성을 강화한다는 비판 등을 받은 동시에 여성의 역할이 주부로 한정돼 있던 시기에 우주비행사부터 로봇 공학자, 기업 임원, 정치인, 스포츠 선수까지 거의 모든 직업을 가진 인형을 출시해 소녀들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불어 넣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바비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후 여러 피부색, 체형을 지닌 인형부터 다운증후군이 있고 보청기를 사용하며 휠체어를 타는 인형 등 다양한 바비 인형들도 출시됐다.

▲할리우드 배우 라이언 고슬링(왼쪽)과 마고 로비가 지난 1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바비'(Barbie) 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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